[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증 성공 스토리] 목표에 도달하고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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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oonHyunSun 댓글 0건 조회 4,271회 작성일 13-09-24 18:01본문
독일로 유학을 갈려고 한 건 미리 계획 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독일을 여러 번 오고가면서 독일이라는 나라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독일에 직접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난 독일유학 준비를 하기 시작한 거였다.
보통 유학을 가게 되면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많이 힘들거야”, “ 많이 외로울거야 “ 라는 등의 말을 많이 해 준다.
사실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면 힘들고 외로울 거라는 것을 예상안한바는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였다.
특히 실습을 받으면서 잘 이해 하지 못해 실수 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독일은 점심시간이 2시간 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좀 쉬다가 와도 여유가 있었다.
나같은 경우는 기숙사까지 너무 멀었기때문에 그냥 혼자 점심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내가 실습을 받던 곳의 플로리스트마이스터(Floristmeisetr)는 엄하게 나를 가르쳤다.
사실 그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점심시간만 되면 혼자 밥 먹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어학원에서만 배운 표준독일어를 가지고 일상대화를 한다는 것은
여간 곤역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도 우리 한국어도 정말로 전국민이 표준국어만 사용한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을것이다.
부산에 가면 부산 사투리..전라도에 가면 전라도 사투리...제주도 가면 제주도 사투리가 있는 것처럼
독일 역시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었기때문에 표준독일어만 가지고는
대화하기는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다.
독일에 2년동안 있으면서 받은 편지가 총 350통을 받았다.
사람들은 350통을 받았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도 있다.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350통을 받을정도면 난 얼마나 썼겠니? 라고 농담처럼 말을 한다.
나한테 어학은 정말 자신없는 것중의 하나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농담삼아 하는 말 중에
‘난 정말 한국어만 하고 살거야‘
‘한국을 절대로 안떠날건데 뭐. 무슨 외국어가 필요하겠어’라는 말들...
나 또한 그러고 다녔으니까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살았던 내가 독일에 있으면서 어학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선택한 방법이 편지쓰기였다.
만약 한국어를 하고 싶으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무조건 편지….말은 무조건 독일어…듣기도 무조건 독일어..
집에 전화도 일주일 한 번정도….어쩔때는 한달에 한 번…
난 짧은 시간내에 독일적인 사고를 가져야먄 했기때문에 한국어를 생각안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이렇게 한국어를 잊기 위해서 시작한 편지쓰기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는 한 방법이 되기 시작했다.
6월에 난 독일 쾰른에 있는 플로리스트마이스터 학교에 입학했다
독일의 학교입학 후 ..첫 시간…
경제학 시간이었다…
참고로 독일의 마이스터학교에는 전공과목이외에 비전공과목이라 해서
경제학, 경영학, 통계학, 법학등 비전공과목도 반드시 해야만 했다.
사실은 독일어 실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서 첫 수업시간이 너무나 긴장을 한 상태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은 바로 시작이 되었고..경제학 수업은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께서 수업을 하시는 거였다.
수업을 하시다가 그 분은 중간중간 질문을 많이 하셨다.
15명의 학생 중에서 외국인은 나 혼자였다..
그래서 어려운 질문은 안하실려고 하는게 사실 눈에 보였다.
그러나..그래도 당연히 나한테도 질문을 하셨다.
첫 질문
“ 한국에도 물건을 사면서 세금이라는 지불해야합니까?”라는 질문이었다.
사실 운이 좋게도 그 질문은 쉽게 이해가 되서 대답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바로 두번째 질문
“한국의 화폐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 근데 난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당황스러럽웠다…
결국은 내 옆에 있는 애가 다시 설명을 해 주어서 난 겨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애들은 웅성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다들 “어떻게 저런 쉬운 말도 이해못하면서 수업을 받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웅성거리는거였을거다.
그 시간부터 난 너무나 창피해서 계속 얼굴이 빨개지면서 수업시간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얼굴에서는 땀이 계속 흐르고…
난 모든 수업이 끝나자마자…기숙사로 돌아와서 베란데에 앉아서 맥주 한병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니까 독일애들이 한 둘씩 와서 내 주위에 앉아서 같이 맥주 마시면서 위로를 해 주는 거였다…
사실 난 너무 고마웠다.
그 다음날…수업….
그 다음날 수업….
사실 이런식의 수업은 계속 되었다.
난 하루에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그 날 그날 수업한 것을 다 이해하기도 나한테는 너무나 벅찼다.
그 날 수업 한 것을 복습하고 있으면 날이 새고 있었으니까
난 바로 수업을 들어가야했고…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매주 작은 테스트가 항상 있었다.
첫 테스트 역사학이었다.
독일 친구들은 사실 거의 공부를 안해도 볼 수 있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난 시험준비까지 해야했기 때문에 잠을 잔다는 것은 거의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첫 테스트 시간..모두가 주관식이었다..
난 한 문제도 쓰지 못했다…단 한 문제도 ..그냥 뛰어나왔다 교실을….
이렇게 개강후 1주일을 보냈다…
난 생각을 바꿨다…나 혼자서는 공부를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독일 애들은 개인사생활에는 거의 관여를 안하기 때문에 내가 방에 들어가 있으면
그 누구도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다..내가 휴게실에 나와 있으면 모를까…
특히 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더더구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주부터는 항상 내 방문을 열어두었다.
겨울에는 너무나 추었고, 애들이 밖에 있으면 떠드는 소리 때문에 사실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내가 자기 전까지는 방문을 항상 열어두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내 방을 방문해 주지 않았다…
그러고 일주일 후…
그 다음부터는 학생들이 한 두 명씩 들어와서.. “뭐 하니?”라는 질문을 하면서 혹시 질문이 있으면
물어보라는거였다.
드디어 난 성공했다.
독일 애들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내 방에 오도록.....
난 그때부터 독일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교실에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독일 친구들이 나를 도와주기 시작하면서 난 조금씩 학교에 잘 적응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친구들은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나를 못살게 하는 친구도 있었다.
교실에서는 그 친구는 나의 옆에 앉았고,
첫 시간에 앉은 자리가 자기의 고정석이었기때문에 그 친구는 졸업할때가지 내 옆에 앉았다...
난 편지를 쓰면 그 친구를 꼭 마귀할멈이라고 별칭으로 불러서 썼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항상 나한테 오면…
“넌 마이스터시험에 합격 못해. 알잖아…근데 왜 이렇게 공부를 하니? “
“포기해…포기하라니까?
그리고 기숙사에 있을때도 그 친구 역시 가끔식 내 방에 들어온 곤 했다.
그럴때마다 안타가운 듯이 한 번 쳐다보고 나가는 데...
난 사실은 내가 독일 플로리스트마이스터(Floristmeisetr) 시험에 합격할 것은 기대도 안하고 있었다..
너무나 나한테는 어려운 시험이었기 때문에 학교만 무사히 졸업하자라는 생각으로 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하루하루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너무나 벅찼기 때문이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이해를 못해서 그 친구한테 물어본적이 있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 설명좀 해줘? ‘
그랬더니 그 친구는 “넌 설명해도 몰라. 그냥 넘어가” 라고 말하고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그때 그 기분…정말 말로 표현을 못한다…
서럽다기 보다는 마음속으로 '악'이라는게 생기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너무 극단적인 표현인 것 같지만...
난 내 짝이 나한테 그러면그럴수록 마음속으로 “두고보자” 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난 "꼭 합격해야지.
무슨 일이 있어도"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정말 더 열심히 했다.
난 내 짝이 잠 자기전까지 절대로 먼저 자지 않았다.
내 짝이 공부를 하고 있던 다른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고 있던 무엇을 하고 있던 간에...
난 무조건 공부를 했다.
내 짝이 텔레비젼을 보면서 밤을 새면 난 공부를 하면서 밤을 샜다.
내 짝은 우리학교 최고 우등생으로 졸업을 했다..이론 실기 모두 합쳐서..
그렇지만 실기점수면에서 난 내 짝을 이겼다.
난 실기점수는 우리 학교 최고점수를 받고 졸업했다.
당시 독일 Floristik international 에 나왔던 나의 리스작품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목적을 만들어라
자의든 타의든.
왜 내가 이 목표물에 도달해야만 하는지를.
정확한 목적이 없는 목표는 절대로 도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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