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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세이] -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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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oonHyunSun 댓글 0건 조회 4,883회 작성일 15-07-1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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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세이] -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표현. "내 직업은 플로리스트 입니다."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저는 플로리스트 입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예학과에 진학하면 매일 식물을 볼 거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식물조직에 대한 학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내 전공인 원예육종(원예유전공학)은 화학적인 비중이 더 컸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식물을 실제로 다루지 못해 아쉬웠는데,

그러던 중에 식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학원을 소개받았고, 꽃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은 유리온실에서 많은 식물을 키우면서 운영되는 큰 농장이었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식물 이용법과 장식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식물은 사람이 아닌데도 사람 같다고 생각한다.

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사람이 물 한 잔에 상쾌함을 느끼듯이 식물도 물을 주면 바로 일어난다.

가끔 힘든 순간, 살아있는 식물들을 보면 힘이 난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식물들을 알아가기 시작햇다.

플로리스트라는 호칭이 국내에서 정식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대략 1990년대 초였다.

내가 처음 꽃을 시작했을 때였으니,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플로리스트가 무슨일을 하느냐는 질물에 나는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대부분은 "아, 꽃집에서 일하시는군요.

근데 그 설명을 왜 그리 거창하게 하세요?" 라고 되묻곤 한다.

사실 초기에는 나 자신조차 이 직업에 대해 확실히 몰랐다기보다도, 꽃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20대 중반쯤이였던 것 같다. 일을 하는데 옆에 서 계시던 분이, "아이구 아가씨 손이 왜 이렇게 거칠어, 장갑 좀 끼고 하지!" 라고 하셨다.

그냥 좀 예쁘지 않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내 손이 거칠다는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괜히 사람들 앞에 손을 보여주기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자주 손을 씻어도 손톱에는 늘 풀물이며 식물, 흙, 수세미 같은 것들이 끼어 있곤 했다.

사실 내  손은 너무나 작고 손가락도 짧아서, 사람들이 "저 손으로 뭘 하냐" 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런 손이 상처투성이에다 거칠거칠 손등이 트기까지 했으니...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손이 말해준다.

손이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정도로 많은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 된다.

남들 앞에 새로운 아름다움 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실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항상 존재하는 법이다.

오히려 내가 플로리스트라는 말을 더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바로 내 손이 아닌가 싶다.

식물들도 느끼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이라 할지라도 자연의 생명력은 함부로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1993년 8월에 처음으로 독일 전시회에 참가했다.

주변에는 다른 독일 플로리스트들도 있었는데, 사실 그렇게 작업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외국 플로리스트들이 작업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런 직업이었구나... 라는 걸 실감했다.

그때부터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것 같다.

이후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헀고, 1998년, 드디어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따가운 시선을 받앗다.

동양인에 대한 대우, 과연 자격을 갖춘 사람일까라는 의심, 100% 이해하지 못하는 독일어 수업들,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었다.

그러나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차차 학교생활에 적응해 갔다.

원예학, 병충학, 생태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교육법, 장식학, 재료학 등 총 17개의 과목을 공부했다.

각 과목별로 필기와 면접시험이 진행되는데, 3개월 동안 치르게 되는 가장 마지막 시험이 바로 플로리스트 작품 테스트였다.

총 5작품을 이틀안에 완성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증을 동양인 최초로 취득하게 되었다.

그 계기로 플로리스트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직업교육의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직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생각,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쉽고 간단하고 화려한 직업이라는 지망생들의 편견들.

어느 위치에서 누군가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단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난 이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는 확신과 자신감을 갖는다면 어떤 직업이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에 대한 스스로의 자신감은 그동안 그림자처럼 지내던 생활을 세상 밖으로 꺼낼 기회를 주었다.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은 학벌이 결정해주는 것도, 화려한 겉보기가 결정해주는 것도 아니며, 돈이 해결해주는것도 아니다.

내가 투자한 노력과 시간, 끈기, 생명체에 대한 소중함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 생애 가장 소중한 표현은 바로, "내 직업은 플로리스트입니다." 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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