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라, 조롱도 잡초처럼 견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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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oonHyunSun 댓글 0건 조회 4,745회 작성일 13-09-24 17:02본문
“ 포기하라, 조롱도 잡초처럼 견뎠죠 “
■ 문현선씨 ‘마이스터’ 되기까지
문현선씨가 독일의 플로리스트 마이스터(Florist Meister.FM) 자격증을 따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동기에서였다.
지난 95년 국내 4년제 대학 원예학과를 졸업한 그는 식물에 관한 보편적 지식만 갖추면 독일인들과 똑같이 FM자격증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가 어학비자를 이용, 독일에서 플로리스트 과정을 밟기 위해 막상 비행기에 오를 때만해도 FM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플로리스트 실습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역시 언어였다. 심한 사투리를 쓰는 플라워 숍의 FM은 문씨를 상당히 엄하게 지도했다. 그런 FM의 지시를 잘못 이해한 문씨가 실수를 저지른 적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는 FM 앞에서는 한마디 대꾸도 못하다가 2시간이나 되는 점심 시간동안 캠퍼스에 홀로 남아 훌쩍이며 밥을 먹곤 했다. “처음 2년 동안 350통의 편지를 받았어요. 그러니 내가 쓴 편지는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는 알아듣기 힘든 표현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편지가 어느덧 문씨에게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타인과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된 것이다.
98년 초 독일 상공부가 주관하는 플로리스트 자격증 시험에 합격한 문씨는 그 해 6월 독일 퀼른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슐레(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대개의 경우 학교마다 ‘인터내셔널 과정’이라는 게 있어서 외국인에게는 예외적으로 중요과목 이수 요건을 생략해 주거나 모국어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의 특혜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예외가 전혀 인정되지 않았다. FM이 되기 위해 그는 독일의 민법, 상법 등 법학을 포함, 경영학, 통계학 등 6개의 비전공 과목까지도 필수로 이수하고 모두 독일어로 주관식 시험을 치러야 했다.
수업 내용을 복습하다가 보면 어느 새 날이 훤히 밝아오고 그러면 또 다시 곧장 다음 수업을 위해 달려가고… 잠을 제대로 잔 날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만 되면 교수가 던지는 쉬운 질문도 잘 알아 듣지 못해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던 문씨는 혼자서는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문씨가 생각해 낸 방법이 자신의 기숙사 방문을 취침시간만 빼고 항상 열어 놓기로 한 것이다. 한 겨울에는 찬바람이 들어와 너무나 추웠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달, 두 달이 지나자 독일 아이들이 한 두 명씩 지나가면서 “뭐하니” 하며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들이 자연스럽게 문씨에게 다가오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독일아이들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학교 공부는 한층 쉬워졌다.
하지만 모두가 그에게 잘 대해줬던 것은 아니다. 문씨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였던 한 여학생을 그를 볼 때 마다 “넌 FM 시험에 결코 합격 못해. 알잖아? 근데 왜 공부하니? 포기해.” 라고 빈정댔다. 그럴수록 문씨는 오기가 발동해 더욱 열심히 했다. 결국 문씨는 2000년 FM시험 실기점수에서 파트너를 능가하는 학교 최고점수를 받고 졸업했다. 그 해 같은 반 학생 15명 중 4명이 낙방했다. 동양인 여성 최초로 FM 자격증을 획득한 문씨의 이름이 독일 협회지에 당당히 등재된 것이다.
현재 고려대, 삼육대, 경희대 등 국내 대학의 원예과에서 겸임교수로 일하는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있는 에꼴 플로랄 드 루이 까또즈에서 플로리스트 양성을 위한 전문반 강의를 맡고 있다. 매일 새벽 4시경에 일어나 화훼도매시장에 나가 꽃을 고르고 이어서 하루 평균 12시간의 수업을 끝내고 나면 곧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실습을 한다. 게다가 틈틈이 짬을 내어 방송국 등에서 무대장식이나 공간연출을 맡기도 한다.
문씨는 요즘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독일 가르트너(조경사)마이스터(Gartner Meister.GM) 자격증에 필요한 실무경험을 쌓고 있는 것. GM이 되려면 펌프나 수중램프 등 전기설비도 만질 줄 알아야 하고 트레일러나 기중기 등 대형중장비 차량도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물 배수를 위해 바닥 경사면을 편평하게 다지고 무게가 25kg이상 나가는 돌을 하루에도 수 차례나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GM은 남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직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벽면 장식을 하고 무거운 묘목을 옮기느라 흙 묻은 옷을 입고 왔다 갔다 할 때는 간혹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청소부’로 취급 받기도 한다.
자정이 다 돼서야 겨우 귀가하는 문씨는 그때부터 식물도감 CD를 꺼내놓고 라틴어로 된 식물명을 하루 50개씩 암기한다. GM이 되려면 계절별로 크기와 색깔이 제각기 다른 4000종 이상의 식물이름과 질병상태 등을 잎사귀 하나만 보고서도 척 알아맞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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