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플로리스트 과정 15기 정경미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경미 댓글 0건 조회 1,646회 작성일 22-01-13 01:27본문
안녕하세요. 한국 플로리스트 과정을 이제 막 시작한 정경미입니다.
제가 5년 전 선배님들의 수강후기를 보면서 '플로리스트'라는 꿈을 막연하게 꾸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수강후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얼마나 큰지 너무나 잘 알기에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한 글자씩 적어봅니다.
25살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알게되다..
처음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알게된건 당시 자주 가던 꽃집에 사장님이 행복하게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관심이 갔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행복하게 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게 되었죠.
꽃집에서 꽃을 사가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지인에게 설레는 마음, 행복한 마음으로 꽃을 사갈 것이기 때문에
그런 꽃을 판매하는 이 직업을 가지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 후 1년 동안 프리저브드 취미반, 초급반, 화훼장식기능사반 등 단기로 꽃을 배우면서
더 전문적으로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고,
지방에서는 그런 체계적인 학원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마지막 코스인 창업반 6개월을 배운다고해서 제가 바로 창업을 할 수 있는 형편과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우연히 문현선 선생님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mflowerin) 글을 보게 되면서,
제가 제대로 배워 전문가 플로리스트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여기밖에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26, 27, 28살 플로리스트라는 꿈을 꾸며 버티다..
25살 겨울 학원 홈페이지에 문의글을 남긴적이 있습니다.
지방에서 다닐 수 없는 이유,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글을 올렸고,
다음날 너무나도 친절히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그 이유를 적어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그 글을 본 순간 그때까지 단 한번도 서울생활을 꿈꿔본 적이 없었는데,
'돈을 많이 모아 28살엔 상경하여 꼭 이 학원에 다니자'라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대략 3년동안의 교육비를 3천만원으로 잡고 서울에서의 생활비와 보증금을 생각하니,
4-5천만원이라는 큰 금액이 나오더라구요.
그때 당시 벌고 있는 수입으로는 한 5년은 모아야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당장 26살 1월부터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빠른 시일안에 가장 많은 돈을 모을 수 있는 직업으로요.
항상 야외에서 일을 하는 특수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가오나 눈이오나 태풍이 불어닥쳐도,
38-40도 폭염속에서도, 추운 겨울에는 작은 핫팩에 의지하며 일을 했어요.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기본이고 어떤 날은 새벽 3시반에 일어나 출근을 해야하기도 했습니다.
퇴근시간은 밤 10시, 11시, 12시 늘 달랐구요.
몇몇 고객님들이 저한테 물어보시더라구요. "나이도 어린데 왜 이렇게 힘든일을 하느냐?"
제 대답은 늘 똑같았습니다. "꿈이 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요"
이렇게 말을 하면 항상 저보고 대단하다고 말해주셨는데요.
이 말을 하는 저 또한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한 선배님이 수강후기에 적으신 글이 생각나네요.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저는 꿈이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말을 200% 믿으며 타지에서 3년을 돈만 벌면서 버텼습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잠은 항상 부족했고 참 많이도 다쳤지만 한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났습니다.
28살, 29살 드디어 꽃을 배우다..
2020년 10월 07일 수요일 목표로 하던 28살에 드디어 첫수업을 들었습니다.
처음 1강 노트정리를 하고 선생님께서 피드백을 해주셨을 때가 생각납니다.
일일이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걸 어떻게 수정해야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시는 선생님의 답 메일에 솔직히 감동받았습니다.
나 외에도 동기 8명에게 이렇게 하나하나 수정을 해주셨을 걸 생각하니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정말 이 학원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FA 1년 과정보다 FD 4개월 과정이 훨씬 힘들었습니다.
FD과정 중 3개월을 회사생활과 병행하면서 했어야 했는데요.
돈을 더 벌려고한 것은 아니였고 제가 그 당시 그만두면 부서내에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었습니다.
밤늦게 퇴근을 하고 노트정리를 했던 날들,
처음 폭포형신부부케를 만들었을 때 묶음작업을 잘못해 다시 처음부터 조립하며 밤을 새우고 학원에 갔던 날,
대칭삼각형을 꽂고 나서 사진을 찍으려고 옮길 때 손에서 놓쳐 오아시스가 박살이 난 순간,
학원가는 날 휴무를 미리 받아내기 위해 새벽 4시에 차를 끌고 회사에 가서 보고했던 날들,
기숙사생활을 하고 있어서 회사언니들 눈치보며 거실에서 밤늦게까지 과제를 했던 날들,
초보운전이라 용인에서 서울까지 덜덜 떨면서 운전해 학원에 간 모든 날들 등 머리에 스치는 많은 날들이 있는데요.
그래도 저는 행복했던 것 같아요. 너무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였으니까요.
돈을 모아야했던 기간이 길었고 그때 이미 너무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런지
저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꽃, 학원, 플로리스트라는 영역에 포기라는 단어는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
30살 현재..그리고 앞으로..
지금은 사실 행복이라는 단어보단 걱정이 더 큽니다.
아직 남은 과제가 산더미이고 언제 졸업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졸업을 할 수나 있는걸까 사실 너무나 막막합니다.
돈을 벌면서 못잔 잠이 지금에서야 몰려오는건지 매일 잠과의 싸움을 해야하고 사실 지난 1년동안은 잠과의 싸움에선 진 것 같습니다.
살면서 후회는 잘 안하면서 사는데 지난 1년동안 일찍 일어나기만 했어도 더 빨리 과제를 통과받았을 것이고,
더 많은 포트폴리오 작품을 해내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내일 당장 잠과 싸우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꽃시장을 가야하고, 통과받지 못한 작품을 만들어야하고,
늘 그렇듯 해야할 일은 많지만 결국은 이런 나날들이 모여 저에게는 큰 자산이 될 것을 믿습니다.
'나는 느린 사람이지만 늦은 사람은 아니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저는 느리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 기간이 길어진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는 말들 중에 가장 힘이 되는 말이 '이제 겨우 꽃을 1년 배웠다'입니다.
1년동안 느리지만 많은 과제들을 해오면서 처음과 분명히 달라진 실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실 요즘은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때가 작품을 하나하나 통과받을 때인 것 같아요.
지금 학원을 다니고 계시는 재학생분들! 자기가 남들보다 느리다고 생각되더라도 꾸준히 해나가기만 한다면
분명 하나하나 작품을 통과받으면서 큰 기쁨을 느낄 것이고,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진 실력에 성취감을 느낄 것입니다.
꾸준히 하기만 하면 나머진 선생님께서 잘 이끌어 주실거에요.
저희 선생님은 노력하는 학생에겐 100%가 아닌 120, 130, 150%를 돌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입학을 망설이시는 분들, 상담신청을 고민하시는 분들! 3년이라는 기간이 그렇게 길다고 느껴지시나요?
저는 겨우 3년만 제대로 꽃을 배우면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게 너무 놀라운데요.
생각보다 3년은 그렇게 길지 않아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길다고 생각되는 기간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입학을 결정하신 분들! 꽃에 대해서는 하나도 알고 올 필요가 없는데, 파워포인트 책 한 권만 공부하고 오세요.
처음 방문상담을 했을 때 저는 거의 컴맹수준이였는데요.
실장님께서 파워포인트 책 한권 사서 미리 정독해오라고 하셔서 그 날 바로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노트정리를 하는데에 아주 아주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름 문과인데도 글을 잘 못써서 제대로 적은게 맞는지, 정말 도움이 될런지 걱정이네요!
뭔가 주절주절 많은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저도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게된 글이였던 것 같아요.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비 플로리스트로 나아가는데 항상 큰 도움을 주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문현선 선생님과 김동용 실장님께 너무나 감사합니다.
지난 1년동안 같이 연습하며 너무나 많은 힘이 되어준 동기이자 친구였던 세영이에게 감사합니다. 우리 남은 동기분들, 힘내서 꼭 같이 졸업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